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UI
INSIGHT 2026.08.06
📌 이 글, 이런 분께 필요해요
  • AX(AI Transformation) 시대에 디자이너 역할 변화를 고민하는 UX/프로덕트 디자이너
  • AI 서비스의 패턴 매칭·할루시네이션 문제를 다루는 AI 엔지니어, PM
  • 온톨로지 기반 AI 설계 원리가 궁금한 분
👀 글 핵심 요약 Key Insights
  • 형태가 같다고 이유까지 같은 건 아닙니다: 맨홀 뚜껑, 교통 표지판, 접시, 알약, 카메라 렌즈는 모두 둥글지만 공학적 안전, 관습 기호, 제작 방식, 인체공학, 광학 법칙 등 전혀 다른 이유로 그 형태를 갖게 되었습니다. 형태의 유사성만으로 관계를 추론하는 습관은 AI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01, 02 참고)
  • AI 할루시네이션과 온톨로지 설계는 같은 문제의 양면입니다: 근거 없는 패턴만으로 그럴듯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할루시네이션이라면, 설명 가능한 관계로만 연결하는 것이 온톨로지입니다. 유나드(U NAD)는 이 원칙 위에서 설계된 AI 플랫폼입니다. (03, 05 참고)
동그란 것들은 정말 다 같은 이유로 태어났을까요?

아침에 문을 나서다가 손잡이를 무심코 돌렸어요. 손잡이도, 버튼도, 다이얼도 사람이 만지고 조작하기 좋으라고 둥글게 만든 거라고, 저는 얼마 전까지 그렇게 믿었어요.

UX에서는 이런 걸 어포던스라고 불러요. 형태가 스스로 사용법을 알려준다는 뜻이에요.

근데 설계하는 사람 입장에서 다시 물어보고 싶어졌어요. 정말 모든 동그라미가 다 그런 걸까요?

그래서 카메라 들고 하루 동안 마주친 동그라미를 하나씩 찍어 모았어요. 어? 이거 아니네 싶더라고요.


01.동그란 이유들

동그라미라는 프레임을 가진 물체들,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같은 프레임 안에 담긴 동그라미들, 이유를 하나씩 물어보니까 진짜 다 달랐어요.

맨홀 뚜껑이 둥근 건 손이 편해서가 아니라, 원은 어느 방향으로 돌려도 지름이 똑같아서 절대 구멍에 안 빠지기 때문이에요. 완전 공학적인 이유죠.

교통 표지판은 테두리를 보면 몸이 먼저 반응하긴 하는데, 딱 '주목해'까지만이에요. 진짜 행동은 안에 그려진 사선이나 화살표가 시켜요. 버튼은 형태 하나로 '누르기'까지 끝내지만, 표지판은 '경계하기'까지만 끝내고 나머지는 내용한테 넘기는 거죠.

접시는 물레가 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남긴 흔적이었고, 동전은 마모가 고르고 자판기가 알아보기 쉬워서 둥글었고, 알약은 삼키기 편하려고 둥글었어요.

카메라 렌즈는 또 달랐어요. 빛이 어느 방향에서 들어와도 똑같이 굴절돼야 하니까, 물리 법칙이 그 형태를 정해준 거예요.

접시도 동전도 알약도 렌즈도, 애초에 사람 행동을 겨냥한 형태는 아니었어요.


02.이름이 만든 착각

의미는 다르지만, 동그라미라는 이유로 한 폴더에 담겨있는 사진들


전부 같은 프레임 안에 있었는데, 행동을 만드는 방식은 하나도 안 겹쳤어요.

근데 사진들을 모아서 폴더에 정리하다가 알아챘어요. 그냥 다 '동그라미' 폴더 하나에 넣고 있더라고요. 모양이 같으면 그룹도 같은 게 맞나, 그 순간 의문이 들었어요.

저는 이 넷이 완전히 다른 이유로 태어났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손은 자연스럽게 다 같은 폴더에 넣고 있었던 거예요.

'동그라미들'이라고 부르는 것까지는 당연했죠, 진짜 동그라미들이니까. 근데 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갔어요.

이름이 같으니까 이유도 같을 거라고, 은근슬쩍 믿어버린 거예요.

이번엔 그게 좀 의심스러웠어요. 어쩌면 저는 관계없는 것들 사이에서 억지로 관계를 읽어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03.기계도 똑같이 한다

그러고 보니 이게 낯설지 않은 방식이더라고요.

AI한테 존재하지 않는 논문을 물어보면, 없는 저자 이름과 없는 출판연도까지 만들어서 아주 그럴듯하게 대답할 때가 있어요. 그걸 '할루시네이션'이라고 부르잖아요. 근거는 없는데 패턴만 보고 그럴듯한 관계를 지어내는 거요.

저도 그 순간, 똑같은 걸 하고 있었던 거예요. 모양이 같다고 같은 폴더에 넣으면서, 없는 관계를 그럴듯하게 만들어내고 있었으니까요.

그게 좀 무섭더라고요. 제가 방금 한 것처럼, AI도 아무렇지 않게 없는 관계를 진짜처럼 말할 수 있다는 게요.


04.사라진 줄 알았던 형태

형태를 지운 것 같던 음성 AI들도, 결국 다시 원으로 돌아온다


그 뒤로 요즘 인터페이스들이 좀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동그라미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거든요. 음성으로 묻고 답하는 화면엔 누를 버튼이 없잖아요. 대화형 AI는 다이얼도, 토글도, 로딩 스피너까지도 필요로 하지 않고요.

근데 이상한 걸 하나 발견했어요. 그렇게 형태를 다 지운 것 같은 음성 AI들도, 화면을 켜면 결국 다시 동그라미를 그리더라고요. Siri도, 구글 어시스턴트도, 챗GPT 음성모드도, 말을 걸면 화면 한가운데 둥근 파동이나 오브가 나타나요.

버튼도 다이얼도 다 없앴는데, '지금 듣고 있어요', '지금 생각하고 있어요'라는 걸 보여줘야 할 때는 또 원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형태가 사라지는 시대가 아니라, 형태가 다른 자리에서 다시 태어나는 시대인 걸지도 모르겠어요.


05.이름 붙일 수 없으면, 연결하지 않는다

그 오브를 보면서, 회사에서 만들고 있는 것도 다시 떠올랐어요.

유나드(U NAD)라는 온톨로지 기반 AI 플랫폼인데, 첫 번째 규칙이 정확히 제가 방금 고백한 그 실수를 막는 거예요.

형태나 카테고리가 비슷하다고 연결하지 않아요. 점검과 현장과 장비와 작업자처럼 전혀 안 닮은 데이터도, 'operates'나 'locatedAt'처럼 이름 붙은 진짜 관계로만 연결하죠.

이름 붙일 수 없는 관계는,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연결 안 해요.

파일이든 DB든 센서 데이터든, 형태가 뭐든 일단 다 받아들이긴 해요. 근데 받아들인 다음엔 반드시 그 관계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거죠.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AI가 그렇게 관계 초안을 만들어도, 그걸 곧바로 믿지 않아요. 데이터가 충분한지, 지금 당장 실현 가능한지, 정말 효과가 있는지, 권한과 보안에 문제는 없는지, 이 네 가지를 다 확인한 다음에야 사람한테 제안이 돼요. 그러고도 발행되기 전에 사람이 한 번 더 확인하죠.

AI는 속도를 내고, 그게 진짜 맞는지는 사람이 책임지는 거예요.

데이터 기반 Agentic AI 플랫폼, 유나드



마치며

말은 쉬운데, 저는 아직 제 안에서는 이 규칙을 못 지키고 있어요. 형태가 같으면 이름부터 붙이고, 이름을 붙이면 관계가 있다고 믿어버려요. 오늘도 어디선가 저는 또 무언가를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 부르고 있겠죠.

사실 이 관찰은 동그라미에서 시작된 게 아니었어요. 시작은 유나드였어요. 기존 AI는 패턴을 학습해서 답을 내놓는데, 그 한계 때문에 관계로만 연결하는 온톨로지 방식이 필요해졌거든요. 근데 그 '패턴 대신 관계'라는 구분이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해져서, 답을 정해두지 않고 왜, 왜, 왜,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일상까지 와 있었어요. 돌아보니 그 질문의 연쇄 자체가 이미 온톨로지였어요. 형태나 느낌이 아니라, 매번 설명 가능한 고리로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거든요.

유플리트는 스스로를 '본질의 상호작용을 창조하는,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혁신적이라고 믿는 UX컨설턴시'라고 소개해요. 문손잡이를 돌리고, 표지판을 올려다보는 것. 이만큼 인간적인 방법이, 결국 AI 할루시네이션을 막는 설계 원리까지 데려다줬어요.

AX(AI Transformation) 시대에 디자이너의 일도 달라지고 있어요. AI 덕분에 그럴듯한 안은 이제 초 단위로 쏟아져요. 그러니 진짜 일은 '뭘 만들지'가 아니라 '이 중에 뭘 버릴지'예요. 이 기능들을 왜 같은 카테고리에 묶었지? AI가 '비슷하다'고 추천한 이 둘, 진짜 관계가 있나요, 아니면 그냥 비슷해 보이나요? 이름 붙일 수 없는 연결은, 아무리 그럴듯해도 일단 의심해보세요.

패턴이 아니라 관계를 따라가 보세요. AI가 놓치는 그 차이를 짚어내는 것, 그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이면서 가장 혁신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