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싫은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CULTURE 2022.12
요즘 필자는 글감 사냥을 위해 여기저기 두리번거린다. 간판도, 풍경도, 행인의 표정도 허투루 지나치지 못하고 어디 좋은 소재 없나, 탐색 중이다. 그러다 ‘이건 월척이야!’ 단번에 캐치했다. 누군가의 책상에 놓여있던 책, 『조선의 위기 대응 노트』

고작 두 번 만난 사이였는데, 한참 해야 할 얘기를 나누다가 막바지에 은근슬쩍 책에 관심을 보였더니 바로 빌려주더라. 제목부터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조선의 위기 대응 노트라니. 나도 위기고 친구들도 위기고 그냥 살아있는 존재 모두가 위기인 것 같은 요즘, 뭔가 답이 있을까 싶어 바로 펼쳐보았다.
위기라고 해서 전쟁이나 재난과 같은 급박한 위험 상황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사전적 의미처럼 ‘안정을 흔드는 급격한 변화, 또는 결정적이고 중대한 순간’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주치는 순간순간이 위기 아니던가. 특히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 직장에서는 크고 작은 위기가 지속적으로 몰려온다. 그래서 회사든 동료든 ‘인재’를 찾아 부르짖는 게 아닐까.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사가 1,000여 건에 이르는데 그 모든 시대가 인재를 잘 운용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인재가 발견되지 못한 채 사장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설사 등용되더라도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사례가 부지기수며, 심지어 정쟁에 휩싸여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인재도 많았다고 한다. “자고로 묻혀 지낸 사람이 한둘이었겠소?”라는 『허생전』의 유명한 대사처럼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쩜 이리 상황은 한결같은지… 오늘 우리가 팁으로 삼을 세종의 시대는 달랐다고 한다. 세종은 온 힘을 다해 인재를 구했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인재를 추천하는 천거 방식, 또 하나는 반대자들로 조정의 요직을 채운 점이다.

주로 과거제도를 통해 인재를 발굴하던 방식과 달리 인재를 추천하는 천거 방식을 적극 활용했는데, 아예 제도화하고 정례화하여 꾸준히 시행했다. “서울에서는 한성부가, 각 지방에서는 감사와 수령이 항상 찾아서 직위와 신분을 가리지 말고, 수효가 많고 적은 것도 구애받지 말고 모두 나라에 신고하라. 그런 사람이 없는데도 억지로 천거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있다면 기필코 천거하라.”며 이미 관리가 된 사람을 대상으로도 시행했다고 한다. 추천인에게 추천 대상자의 능력과 특기, 실적까지 기록하여 제출하게 함으로써 공정성을 높였다고 하니 인재 발굴과 양성에 진심이었던 듯하다.

천거방식보다 인상적인 점은 인재가 자신의 역량을 남김없이 펼칠 수 있도록 적절한 벼슬과 예우를 해준 것은 물론, 그의 신념과 뜻이 꺾이지 않도록 주의했다는 점이다. 설령 왕에 대한 날 선 비난이라 할지라도 본인의 생각을 개진할 수 있도록 경청하고 수용했다고 한다. 과거 시험에서 세종의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이 높은 순위로 합격했는데, 이를 두고 왕을 모욕했다며 합격 당사자와 합격시킨 자까지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쳤으나 세종은 다음과 같이 진노했다. “과거를 실시하여 대책을 묻는 것은 장차 바른말을 숨기지 않는 인재를 구하기 위해서다. 설령 내가 노여워하며 그 자를 죄주려 해도 그대들이 나서 보호해야 마땅하거늘 도리어 탄핵하다니 어찌 된 일인가. 앞으로 내게 직언할 자들의 길을 막고 나아가 과거를 관장한 대신까지 공격하여 국가에서 선비를 선발하는 공명한 정신까지 모욕하는구나.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닌가?”

자유로운 반론을 허용하고 수용하는 것을 넘어 조정의 주요 직위를 ‘반대자’로 채우기까지 이어진다. 이는 세종의 인사 운영이 갖는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한다. 와! 역시 대인배다. 반대자를 중용하여 시너지를 낸 사례들을 쭉쭉 접하다 보니 ‘자신의 결정에 잘못된 점이 없는지 반성하고 정책의 문제점을 제거해나간’ 세종이야말로 우리가 롤모델로 삼을 리더가 아닌가 싶다. 필자는 내 말을 콕콕 짚어 반대하는 사람을 손톱 밑의 가시처럼 느끼지 않을 자신이 없다. 나의 에너지를 빼앗는 뱀파이어라 단정하고 거리를 두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리더의 위치에 있지 않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한 세종의 모습이었다. 뜻이 맞는 좋은 벗만 있다면 내 취약점을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나를 뜨끔하게 하는 사람이 있어야 속 쓰리게 반성했던 걸 돌아보면 우리 삶에 반대자의 역할이 크긴 크다.

문득 ‘나는 좋은 인재인가?’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이 나를 추천하고 싶어 하나? 함께 하고 싶은 사람으로 여겨지나? 새가슴이라 싫은 소리 한 번 못하고 어떻게든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했는데, 그게 좋은 태도라고 안주하지는 않았나? 리더는 이러이러해야지 생각은 하면서도 실행에 옮길 때는 주저하지 않았던가?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이게 맞다고 저질러도 보고 수습도 해보고 싸워도 보고 했으면 좋았으련만 너무 얌전하게 살았던 게 후회도 된다. 어차피 내가 하는 게 맞다고 설득하면 그만인 거 아니냐며 설득의 문제라고 했던 어느 유플리더의 말이 떠오른다. 아, 멋지게 살아볼걸!

난세에서 영웅 난다고, 리더는 위기에서 빚어지는 것 같다. 맷집이 단단해서 웬만한 일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알고 보면 별 일 아니라며 시간이 되면 해결이 된다며 담대하게 자리를 지키는 리더는 알고 보면 후천적인 결과물일 수도 있겠다. 갑자기 맷집이 단단해지고 싶은데, 내 위기는 어디쯤 오고 있는 거지?

더 커질 맷집을 위해 ‘덤벼라!’ 정신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늘 얘기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란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이 바닥에서 클 자라면 다가올 위기에 긴장하지 말고, 우두득 목 꺾고 손가락 관절 꺾고 허리 꺾으며 기대해보자.(는 말이 부디 고깝게 들리지 않길 바라며 오늘도 파이팅! 응원해본다.)